My practice deals with exploring specific natural and architectural spaces, and reframing these spaces through the embodiment of a different set of senses, memories, and imagination. Anchored in my own memories and perceptions, my paintings and sculptural installations are manifestations of this transient nature of space and its elements—from which I hope a viewer can extract his or her own experience unrestricted by the barriers between the real and the surreal.

Through my practice, the use of space and the innerscape is reframed and expressed through gathering objects or images of architectural and natural spaces, and re-appropriating them through my paintings and drawings. By transforming these spatial images through my work, I attempt to explore complex relationships between architecture, perception, and imagination. Through this exploration, I hope my work can open up a contemplative and imaginative perception of space through this relational process and that the interplay between the paintings, drawings, and sculptural installations evoke in the viewer their own series of contemplative moments as they pass through their own innerscape.


공존의 순간,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을 환대하는 삶


박겸숙(평론, Ph.D 미학)


캐나다와 한국에서 활발히 작업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 미라 송은 인공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공존의 순간들을 화면에 담는다. 자연과 조화롭게 연장되는 건축적 공간들과 우리의 거주 공간 속에 들어와 자신의 생명력을 마음껏 드러내며 생장하는 식물들을 소재로 삼는다. 작가는 자연과 인공이 맞닿은 이 공간들 속에서 생성되는 유기적 관계들을 탐구하며 이를 시각화해 오고 있다.

밴쿠버의 공원 산책길에 만난 다채로운 식물들과 정제된 웅장한 건물들, 그리고 이웃집 작은 정원에 가꾸어진 꽃들과 창 너머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벽으로 두른 거주의 공간과 탁 트인 외부 환경 사이의 경계 어딘가, 이어짐의 공간에 머문다. 작가는 무해한 자연의 생명력을 품은 캐나다의 일상 공간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이곳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운 조형 언어들이 만들어낸 환대의 공간이다. 미라 송은 화면 속으로 이어지는 시선의 움직임과 빛과 색을 이용해 분위기로 만들고, 마치 공간을 설계하듯 조율하여 자신만의 컴포즈(compose)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구현하려고 하는 것은 어떠한 강요나 억압없이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조화롭고 편안한 공간감이다. 그것은 공존을 향한 지극히 서양적이면서도 너무나 동양적인 시선이다. 작가는 그 동서양의 궁극적 태도의 접점을 본능적으로 찾아낸다. 그렇게 내부와 외부, 추상과 구상,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공과 같은 이분법의 경계를 작가는 넘어선다.


한옥의 낮은 담장, 넓게 트인 대청마루, 창호지 문틀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 근대와 자연, 사람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시선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주체가 된다. 한옥은 내부 공간과 외부 자연 공간이 구분되면서도 동시에 연속성을 갖는 건축이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확장’되는 이 시선을 작가는 밴쿠버의 낮은 담장 속 정원과 내부 공간으로 이어지는 회랑과 유리창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어떤 정제된 풍경이다. 웅장한 숲과 함께 공존하며 생활과 일상의 일부로 식화된 자연, 내부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되며 이어지는 회랑, 그곳을 따라 바람이 통하는 열린 숨길, 그것은 일종의 ‘여백’으로 작가에게 다가왔으리라. 동양화에서 ‘여백’은 단순히 공간적 공백이 아니라, 자연과 인공, 그리고 공간을 관조하는 정신적 태도를 드러내는 미학적 원리이다. 작가는 벤쿠버에서 만나는 건축에서 높은 담장이나 벽과 같은 물리적 경계를 세우지 않고 내부의 공간으로 외부 환경이 수렴될 수 있게 열린 공간을 만들어 공존하려는 삶의 태도를 읽어낸다. 그것은 건축과 자연,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긴장감 있게 조율하는 진지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태도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인간 존재의 조화로움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작가는 가만히 숨죽여 명상하듯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향한다. 그 안에서 비로소 제대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 자신의 어둡던 내면에 빛을 들여 그 안에서 생장하는 모든 것들의 시간과 함께 할 수 있는 상상의 시공간을 시각화하는데 집중한다. 온전히 자신에게 침잠하며, 거기서부터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 온전히 머무름이다. 관조적 태도, 바로 이것이 작가 미라 송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도달하려는 어떤 상태이다. 그것은 편안함 그 자체이다. 관조란 깊은 사색이나 내적인 응시를 통해 어떤 초월적 대상을 향한 마음의 상태로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영어 “contemplation”은 라틴어 “templum(템플럼, 성전)”에서 유래했다. 거기에 “con-”은 “함께”라는 뜻이 더해져 “성전, 즉 신이 머무는 거룩한 곳”에 함께 머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작가는 요란하게 휘몰아치는 일상의 스펙터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향하게 하고, 거기에서 어떤 중요한 질문을 얻을 수 있는, 고요하지만 생명력으로 충만한 어떤 환희의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것은 어떤 재현의 대상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내부이면서 외부인 공간이자, 그 경계 너머에 드러나는 열린 공간이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조화롭게 머물며, 다시 자신의 존재와 조우할 수 있는 어떤 존재론적 성찰의 공간을 화면 속에 구현하고자 한다. 그것은 자연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사유하는 창구이자, 무위자연의 태도로 내적 고요함에 이르러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신적 직관으로 이어지는, 동양과 서양의 궁극의 철학적 태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이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층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내면적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가 미라 송의 시각은 독특한 조형 언어에서도 발견된다.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울림이다. 톤의 조화로움을 바탕으로 어느 곳에도 거슬리거나 불편함을 주지 않는 컬러와 터치, 그리고 투명함. 구성적 측면에서 세련되고 모던한 디자인을 화면에 구현하면서도, 모든 요소들은 전적으로 자연으로부터 길어온다. 식물들을 관찰하다 보면, 마치 숨을 쉬듯 투명하면서도 고유한 색을 발현한다. 작가는 그 빛나는 듯한 투명한 색감을 일종의 생명력으로 해석한다. 묽은 물감으로 투명하고 가감없는 붓터치로 레이어를 쌓아 올려, 그 식물이 생장하는 모든 시간들이, 식물의 역사로 드러나도록 붓질을 해나간다. 그렇게 투명하게 발하는 자연의 색으로 최대한 그 자연 자체의 물성에 가깝게 다가가려 한다. 또한 식물을 둘러싼 주변의 건축물에도 투명한 색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인공물들의 견고함에도 투명한 붓질을 더해 자신의 시간의 축적하며 살아가는 대상으로의 가능성을 열어주어, 우리와 함께 그리고 자연의 생명력과 어울려 살아가는 대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거기에 작가는 또 하나의 존재를 더한다. 화면 곳곳에, 조용히 자리한 붉은 ‘페블’이다. 정원의 보도(步道)를 장식할 때 사용하는 조약돌들을 일컫는 페블(pebble)은 인위적인 모자이크나 타일과는 달리 순수한 자연물이다. 작가는 이 소박한 형태의 조약돌에 붉은 색을 입혀 페블 또한 생명체임을 상징한다.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 감각과는 다르지만, 페블 또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고통도 기쁨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아닐까. 작가는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페블’들을 작품 속에 위치시킨다. 반복적으로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페블은 화면 속 공간의 주인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고정된 공간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를 꿈꾸는 충동이자 생명력의 상징이다. 작가는 화면 속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형태나 색감으로 고정되어 더 이상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죽어있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살아있는’ 생명의 상태로, 자신들의 시간을 살아나가도록 만든다. 페블은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혹은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자아일 수도 있다.


작가 미라 송의 조형적 탐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시간과 함께하는 공간 속에서 모든 것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관찰하며 이루어진다. 자연과 인공,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열림과 닫힘, 곡선과 직선과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이 모든 ‘생성의 과정’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작가의 작품 속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은 작은 우주의 은유이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들이 공생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우리 삶의 축소판이다. 작가 미라 송의 작업은 자연과 건축, 생명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영속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조적 태도를 통해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잊혀지기 쉬운 모든 ‘존재의 연결성’을 감지하는 우리의 감각을 되살려준다.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욕망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식물들과 그 틈 사이에 놓인 페블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를, 자신의 존재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을 환대하는 삶의 여유를 갖기를 권한다.


식재된 감각의 풍경

김미향 (Gallery Dos)

현대문명의 집합체인 도시는 급변하는 새로운 이미지들로 항상 넘쳐나는 곳이다. 우리는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공적인 것들과 항상 공존하고 있으며 이를 당연한 풍경으로 받아들인다. 풍경은 어떤 정경이나 상황 혹은 눈에 보이는 주변 환경으로 정의되지만, 예술에서의 풍경은 대상과 그것을 보는 사람 사이의 일정한 거리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이다. 그 매개체가 되는 2차원 평면은 현대에 이르러 대상을 재현하는 환영의 공간이 아니라 작가만의 표현방식으로 내면세계를 형상화하는 공간으로 꾸준히 전개되어왔다. 이처럼 풍경은 눈을 통해 인지되지만 예술에서의 풍경은 현실과 비현실을 만나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의 습관적인 시선을 자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송미라는 유년 시절 분재 화분 안에 만들어진 공간 안의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폈던 상상의 나래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물질로 변환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되었던 사적인 작은 공간은 도시라는 커다란 공간으로 확대된다. 그 과정에서 개입되는 기억과 오감의 모호한 뒤섞임은 그녀만의 새로운 내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송미라의 일차적인 관심은 공간 그 자체에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오히려 영향을 받기도 한다. 공간이란 개념은 나를 둘러싼 3차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시각이나 촉각 등의 작용에 의해 인식될 수 있고 혹은 경험이나 선험을 통해 인식될 수 있다. 기억된 것들은 처음에는 선명하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 변형되거나 점차적으로 소멸되면서 결국 실재했던 시각적 이미지와는 다른 주관적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결국 공간은 빛이나 온도, 색 등의 외부적인 영향과 개개인의 감성에 따른 내부적인 영향에 따라 다르게 인지될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이다. 작가는 이처럼 객관적으로 붙잡을 수 없는 공간을 ‘멈춤’이라는 단어로 고정시키고 화면의 밀도감보다는 곧 흘러가버릴 것 같은 모호함을 기조로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지금 가까이에 남아있는 것이 흔적이라면 송미라의 작품은 그 흔적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작가에게 작업의 시작점이 되었던 화분은 사적인 일상생활을 담고 있는 공간인 동시에 상상을 통한 일탈로 연결해주는 상징의 공간이었다. 경험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상의 시간들은 흔적이 되어 작품에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마치 눈의 가시범위를 벗어나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은 사그라지는 감각을 붙잡으려는 듯하다. 이미지의 명확하지 않음은 오히려 보는 이의 상상을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한편으로 풍경에서 보이는 인물의 부재는 마치 보는 이가 관찰자가 되어 탐험하는 것과 같은 낯설음의 정서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과 낯설음의 이중적인 공존은 작가만의 아우라가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공간의 본질적인 특성은 보존한 채 작가의 심상을 통해 걸러진 감각의 단편들은 시적인 언어가 되어 화면에 작용한다. 간헐적으로 떠오른 순간순간의 파편화된 감각들은 자율적인 이미지를 획득하고 토양에 재배되듯 식재되어 재구성된다. 기하학적인 도형과 선들이 보여주는 화면구성은 공간이 가지는 견고함에 걸맞은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물감의 농도가 엷어져 밑 색이 드러나거나 물감이 흘려진 자국들은 고정불변할 것 같은 외부환경을 유연하게 탈바꿈시킨다. 송미라는 재료가 가진 마티에르 안에 내적감성을 투명하게 쏟아낸다. 물감 층이 그대로 드러나는 꾸밈없는 단번의 붓질로 생기는 우연한 물성은 보는 이의 오감을 자극한다. 여기에 더해 여백과도 같은 백색의 배경은 사색을 위한 사고의 장을 넓히고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풍경의 특징은 비로소 멈추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사색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공간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삶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내면의 주관적 표현의식이 만남으로써 생기는 재구성된 풍경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추구한다. 공간의 경계가 소멸되고 현실과 환각이 융합된 듯한 몽상적 이미지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경험들을 화면에 옮기려고 한 결과이다. 이처럼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서정적인 풍경은 실재에 근거를 두지만 작가는 이를 연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서를 남겨 보는 이와의 공감을 유도한다. 본인의 감각을 덧씌워 화면에 풀어낸 심상의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끌어 내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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